뉴스를 보면 미국과 이란이 늘 싸우고 있어요. 제재, 핵 협상 결렬, 군함 파견, 폭격… 도대체 두 나라는 왜 이토록 오래, 이토록 격렬하게 싸우는 걸까요? 2026년 현재까지도 이란 핵 협상이 결렬 위기에 처하고, 미국이 중동 해역에 항공모함 전단을 배치하는 상황입니다. 이 싸움의 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깊어요. 단순한 핵 문제가 아니라, 석유·배신·혁명·자존심이 얽히고설킨 70년짜리 드라마입니다. 지금부터 그 시작부터 현재까지 차근차근 풀어보겠습니다.
원래 미국과 이란은 친한 사이였다
믿기 어렵겠지만, 미국과 이란은 한때 매우 가까운 동맹 사이였습니다. 1950~60년대 냉전 시절 이란은 중동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 중 하나였어요. 당시 이란의 팔라비 왕조, 특히 모하마드 레자 샤 국왕은 친미 노선을 걸었고, 미국은 이란을 소련 봉쇄의 핵심 거점으로 활용했습니다. 심지어 1957년에는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이란에 민간 핵 기술을 직접 지원해 주기까지 했어요.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 프로그램 덕분에 이란은 핵 기술의 초석을 미국에게서 받은 셈입니다. 지금 미국이 이란 핵을 막겠다고 군사력까지 동원하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역사죠.
그런데 이 밀월 관계에는 처음부터 균열의 씨앗이 있었습니다. 그 씨앗은 바로 석유였어요.
1953년, CIA 쿠데타로 심어진 불신의 씨앗
1951년 이란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민주적인 선거로 총리에 당선된 무함마드 모사데크가 이란 석유를 국유화하겠다고 선언한 거예요. 당시 이란 석유는 영국 기업 앵글로-이란 석유회사(현 BP)가 거의 독점하고 있었는데, 이란 국민들은 자국 석유 이익을 고스란히 외국에 빼앗기는 현실에 분노했고, 모사데크는 그 분노를 등에 업고 당선된 민족주의 지도자였습니다.
당연히 영국은 화가 났어요. 그런데 당시 냉전 한복판에서 미국은 "이란에서 공산주의가 득세하면 소련이 중동 석유를 가져간다"는 논리로 영국과 손을 잡았습니다. 1953년 미국 CIA와 영국 MI6는 합동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사데크 정권을 전복했어요. 이 작전의 이름이 바로 '아약스 작전(Operation Ajax)'입니다. 쿠데타로 실각한 모사데크는 3년 감옥살이 후 가택연금으로 생을 마감했고, 팔라비 국왕의 독재 체제가 강화됐습니다.
이란 국민의 눈에 미국은 그날부터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됐습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뒤에서는 민주 정권을 무너뜨린 이중성. 석유를 지키기 위해 이란 국민의 선택을 짓밟은 나라. 이 상처는 70년이 지난 지금도 이란 사람들의 뼛속에 남아있어요. 2013년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CIA 개입을 인정했지만, 이란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처음으로 빼앗아 간 나라다." — 이란 혁명 이후 이란 국민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1979년 이슬람 혁명, 외교 관계의 완전한 파탄
1970년대 팔라비 왕조의 독재는 극에 달했어요. 비밀경찰 사바크(SAVAK)는 반정부 인사를 고문하고 학살했고, 빈부격차는 커졌으며 이슬람 전통 가치는 억압받았습니다. 이란 국민의 분노가 한계에 달했을 때, 그 분노를 한데 모아 폭발시킨 인물이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였어요.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성공하며 팔라비 왕조는 무너지고, 이란은 이슬람 신정 공화국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청천벽력이었어요. 중동의 핵심 동맹이 하루아침에 반미 혁명 정부로 바뀐 겁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의 사건이 터집니다. 1979년 11월 4일, 이란 학생들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미국인 52명을 무려 444일간 인질로 잡은 거예요. 전 세계가 경악했고, 미국은 엄청난 치욕을 당했습니다. 당시 카터 대통령이 보낸 구출 헬리콥터 부대는 사막에서 모래폭풍에 휩쓸려 비참하게 실패했고, 이 사건은 카터의 재선 실패에까지 영향을 미쳤죠. 미국은 이란과 외교 관계를 즉각 단절했고, 이 단절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 연도 | 사건 | 결과 |
|---|---|---|
| 1953년 | CIA 쿠데타, 모사데크 정권 전복 | 이란 반미 감정의 뿌리 형성 |
| 1979년 | 이슬람 혁명·미국 대사관 인질 444일 | 미·이란 외교 관계 단절 |
| 1980년 | 이란-이라크 전쟁, 미국이 이라크 지원 | 이란의 적대감 증폭 |
| 1988년 | 미 해군, 이란 민항기 격추·290명 사망 | 이란 국민 깊은 상처 |
| 2002년 | 부시, 이란을 '악의 축' 규정 | 이란 핵 개발 가속화 명분 |
| 2018년 | 트럼프, 이란 핵 합의(JCPOA) 일방 파기 | 제재 재개·긴장 최고조 |
| 2020년 | 솔레이마니 사령관 암살 | 전쟁 직전 상황 |
| 2025~2026년 | 핵 협상 결렬·미군 함대 파견 | 군사 충돌 위기 현재 진행 중 |
배신 위에 배신, 이란-이라크 전쟁의 상처
1980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이란을 침공하며 이란-이라크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은 이라크 편을 들었어요. 이란이 혁명 이후 반미 노선을 걸었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이라크가 이란을 약화시켜 주는 게 전략적으로 유리했던 겁니다. 미국은 이라크에 정보·무기를 지원했고, 사담 후세인이 이란군에 화학무기를 쓰는 걸 알면서도 묵인했습니다. 이란은 8년간의 전쟁에서 약 50만 명을 잃었어요.
그리고 1988년, 미 해군 USS 빈센스 함이 이란 민항기를 전투기로 오인해 격추했습니다. 탑승한 민간인 290명이 전원 사망했어요. 미국은 사과 대신 '정당한 방어 행위'였다며 해당 함장에게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이란 국민이 미국에 대해 품은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상상이 가실 거예요.
핵 문제, 왜 이란은 핵을 포기 안 하는가
2002년 이란의 비밀 핵시설(나탄즈·아라크)이 폭로되며 핵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란을 북한·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지목했어요. 이때부터 핵은 미·이란 갈등의 핵심 축이 됩니다.
이란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핵무기 개발이 아니라 평화적 핵 이용을 원한다. 미국이 먼저 핵 기술을 우리에게 가르쳐줬잖아. 그런데 왜 우리만 안 되냐?" 반면 미국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이란이 핵을 가지면 중동 핵 도미노가 시작되고, 이스라엘이 위험해진다." 두 논리 다 일리가 있기 때문에 협상이 30년째 제자리인 거예요.
2015년 오바마 행정부는 결국 이란과 핵 합의(JCPOA)를 이끌어냈어요. 이란이 핵 개발을 동결·제한하는 대신 경제 제재를 풀어주는 역사적 합의였죠. 전 세계가 환영했지만, 트럼프가 2018년 일방적으로 합의를 파기해버렸습니다. 이란은 격분했고, 핵 개발을 재개했어요. 그리고 2020년 1월, 트럼프는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를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드론으로 암살했습니다. 이란의 국민적 영웅이 암살당하자 이란은 전국이 분노로 들끓었고, 양국은 전쟁 직전까지 갔습니다.
"이란은 협상을 함정으로 간주하고 있다. 합의를 맺어도 미국이 언제든 파기할 수 있다는 걸 2018년에 뼈저리게 배웠기 때문이다." — 2026년 이란 핵협상 분석 보고서
2026년 지금도 전쟁 일보직전
2026년 2월 현재,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 미국은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생산 중단과 친이란 무장 세력(헤즈볼라·후티·이라크 민병대) 지원 중단을 요구하고 있어요. 반면 이란은 선제적인 경제 제재 해제 없이는 어떤 타협도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고수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합의하지 않으면 가혹한 결과가 따른다"고 경고하며, 동시에 중동 해역에 항공모함 전단을 배치했어요. 이란도 "어떤 조치든 취할 준비가 돼 있다"며 맞섰습니다.
이 갈등의 또 다른 배경에는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미국의 중동 최우선 동맹인 이스라엘과 이란은 앙숙 중의 앙숙이에요. 이란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팔레스타인에서 시온주의 정권을 몰아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합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키는 한 이란과의 완전한 화해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시각도 많아요.
결국 이 싸움의 본질은 무엇인가
미국과 이란의 갈등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배신과 자존심, 그리고 패권"이에요. 미국 입장에서 이란은 동맹을 배신하고 반미 혁명을 일으킨 뒤 핵을 개발하려는 위험한 적국입니다. 이란 입장에서 미국은 민주 정권을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적국을 지원해 자국민을 죽이고, 민항기를 격추하고도 사과도 않은 제국주의 강대국이에요. 두 나라 모두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수십 년에 걸쳐 켜켜이 쌓여있기 때문에, 외교적 협상 하나로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에 석유, 핵, 이스라엘, 중동 패권이라는 네 가지 현실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요. 70년간 싸워온 두 나라가 2026년에도 여전히 전쟁 일보직전에 있다는 사실은, 이 갈등이 얼마나 깊고 복잡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결국 이 싸움이 끝나려면 역사적 상처에 대한 진지한 인정과 상호 신뢰 구축이 먼저 필요한데, 지금 당장 그걸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핵심 요약: 1953년 CIA 쿠데타 → 1979년 이슬람 혁명·인질 사태 → 이란-이라크 전쟁 배신 → 민항기 격추 → 핵 문제 부상 → 2018년 핵합의 파기 → 2020년 솔레이마니 암살 → 2026년 전쟁 위기. 70년의 상처가 쌓인 이 갈등,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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